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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임시폴더/문학소녀인척 2011. 6. 7. 13:10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 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정작 술취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닌 나의 나날인데
비가 와 선명해진 원고지칸 같은 보도블록 위를
타인에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날들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을 확 펼쳐
사랑 한 번 못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르는 질문의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 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을 확 펼쳐본느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발목으로
비가 싫어 우산을 쓴 것이 아닌 사람들 사이를
걷고 또 걸으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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