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루하루기록 2024. 9. 14. 14:39

    한국에서 일하던 사회초년생 시절에는 여기저기 들이받고 뾰족하게 구는 게 일을 잘하는 건 줄 알았다. 내가 불과 얼마 전에 공유한 내용을 제대로 안 본 건지 새로운 것인 양 사람들한테 보낸 나보다 열댓 살은 많았던 다른 팀원의 이메일에 내가 공유했던 메일 재첨부해서 답장 보내서 무안하게 만들지 않나, 우리 팀이 몇 번이나 요구대로 자료를 정리하고 보고서를 수정해서 보고했는데도 그래서 인사이트가 뭐냐고 질문하는 높은 분께 이 정도 했으면 인사이트는 찾으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뉘앙스의 말을 하질 않나. (그 질문을 받은 시간이 밤 11시였으니 나를 비롯한 우리 팀 모두 열받을 만하긴 했지만ㅎㅎ 이제와 생각해보면 가장 어린 구성원으로부터 그 건방진 말을 듣고도 화내지 않고 우리 팀장이랑 담배나 하나 태우러 다녀와서는 허허 하고 넘어간 그 분이 참 마음 좋은 분이었다 싶다. 팀장과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내가 다 떠먹여드려요?! 이랬다며 나를 두고두고 놀렸었다.) 개념도 없고 철도 없던 시절.

    이제 경력이 어느 정도 쌓이고 나니 정말 일을 잘 하는 사람은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매일 나와 크든 작든 함께 일하고 소통하게 되는 모두에게 친절하려고 노력한다. 아이유가 여진구에게 쓴 편지에 ‘친절한 것이 얼마나 강하고 멋진 태도인지 몸소 가르쳐줘서 고맙다’는 말이, 문상훈이 유재석에게 쓴 편지에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고 속편한 핑계를 댈 때마다 형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저는 친절한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라는, 내내 의심해왔던 말을 한 번 더 믿기로 합니다‘라는 말이 적혀있었는데, 공감한다. 친절한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다른 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고 나의 뜻을 전달할 수 있는 사람. 다른 이가 마음이 동해서 나와 우리를 위해 일을 하게 할 수 있는 사람.

    이번주 팀 분위기가 살짝 살벌했다. 나는 우리 회사에서 아마존 미국과 캐나다를 담당하는 eCommerce marketer로 일하고 있다. (채널 마케터, 쇼퍼 마케터라고도 한다.) 회사 내 여러 부서가 아마존 미국/캐나다 업무를 위해 협업을 하는데, 부문별로 세일즈를 담당하는 몇 명의 Key account manager를 필두로 그를 보좌하는 Business analyst, 그리고 나와 같은 eCom marketer가 같은 팀보다도 더 끈끈하게 한 팀처럼 일하곤 한다. 3분기를 마감하며 세일즈 압박이 들어온 모양인지, 나와 짝꿍처럼 일하는 키어카운트매니저 말투가 요 며칠 묘하게 날이 서있었다. 말을 왜 이렇게 하나 살짝 짜증이 나서 어떻게 받아쳐야 하나 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기회를 봐서 회의 때 대강 이런 식으로 물어봤다. ‘As Nicole briefly mentioned in another meeting, and also as I can feel from our conversation, there seems a bit of pressure on more sales. I am wondering what is expected to come and how you feel about that.’ 머쓱한지 조금 웃더니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이고 그래서 9월에 얼마의 매출을 더 해야하며 이러이러한 계획으로 달성할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어느 정도 있긴 한데 빡세다는 식으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하더라. 그 후로는 내 마음도 그의 마음도 조금 편해진 느낌. 똑같이 받아치지 않길 잘했지.

    최근 ’Be curious, not judgemental’이라는 문구를 듣고 아, 마음 속에 새겨두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화내지 않고, 멋대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일을 재단하지 않고, 납득되지 않는 일이 있다면 물어보고 대화하면서, 친절하고 다정하게. 그렇게 일하고 또 살고 싶다. 불 같은 성정을 다스리는 게 쉽진 않지만.ㅋㅋㅋ 지금은 떠난 리더인 아담이 회사 생활을 하다 수년 후 돌아봤을 때 내가 2024년 매출을 몇 프로 달성했는가를 기억할 지, 다른 동료의 성장에 기여하고 그의 인생 일부를 함께 나눈 것을 기억할 지 생각해보라고 했었다. 참 맞는 말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수년 후 돌아봤을 때 내가 기억하고 내게 남아있는 것이 사람이었으면, 그들과 나눈 인생의 조각과 따뜻한 이야기들이라면 좋겠다.

    댓글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