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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지우 '늙어가는 아내에게'
    임시폴더/문학소녀인척 2016. 10. 25. 15:56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렙토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의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낫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은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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