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폴더/문학소녀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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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보선 '삼십대'임시폴더/문학소녀인척 2011. 10. 15. 14:51
나 다 자랐다, 삼십대, 청춘은 껌처럼 씹고 버렸다, 가끔 눈물이 흘렀으나 그것을 기적이라 믿지 않았다, 다만 깜짝 놀라 친구들에게 전화질이나 해댈 뿐, 뭐 하고 사니, 산책은 나의 종교, 하품은 나의 기도문, 귀의할 곳이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이지, 공원에 나가 사진도 찍고 김밥도 먹었다, 평화로웠으나, 삼십대, 평화가 그리 믿을 만한 것이겠나, 비행운에 할퀴운 하늘이 순식간에 아무는 것을 잔디밭에 누워 바라보았다. 내 속 어딘가에 고여 있는 하얀 피, 꿈 속에 니가 나타났다, 다음 날 꿈에도, 같은 자리에 니가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너랑 닯은 새였다(제발 날아가지 마), 삼십대, 다 자랐는데 왜 사나, 사랑은 여전히 오는가, 여전히 아픈가, 여전히 신열에 몸 들뜨나, 산책에서 돌아오면 이 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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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민복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임시폴더/문학소녀인척 2011. 6. 7. 13:10
우산은 말라가는 가슴 접고 얼마나 비를 기다렸을까. 비는 또 오는 게 아니라 비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위해 내린다는 생각을 하며, 혼자 마신 술에 넘쳐 거리로 토해지면 우산 속으로도 빗소리는 내린다. 정작 술취하고 싶은 건 내가 아닌 나의 나날인데 비가 와 선명해진 원고지칸 같은 보도블록 위를 타인에 떠밀린 탓보단 스스로의 잘못된 보행으로 비틀비틀 내 잘못 써온 날들이 우산처럼 비가 오면 가슴을 확 펼쳐 사랑 한 번 못해본 쓴 기억을 끌며 나는 얼마나 더 가슴을 말려야 우산이 될 수 있나.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르는 질문의 소낙비에 가슴을 적신다. 우산처럼 가슴 한 번 확 펼쳐보지 못한 날들이 우산처럼 가슴을 확 펼쳐본느 사랑을 꿈꾸며, 비 내리는 날 낮술에 취해 젖어오는 생각의 발목으로 비가 싫어 우산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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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中임시폴더/문학소녀인척 2010. 10. 10. 22:37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있는 내 삶이 어떤 뱡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각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201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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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호 '인연이 아니라는 말'임시폴더/문학소녀인척 2010. 9. 19. 22:26
당신을 보내고 천 년을 살았다는 제주도 비자나무 상록의 활엽을 보네 잎잎마다 바라보는 향이 다르다지만 모두가 저렇게 푸르다면 분명 시간의 국경을 넘어온 천 년의 이파리가 저 잎들 어딘가에서 나를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 혼자서 바라보았을 천 년의 석양과 천년의 밤하늘과 천 겹의 적막을 생각하며 나라는 나라와 당신이라는 나라의 국경을 생각하며 인연이 아니라는 말은 얼마나 억울한가 우연에 기댄다는 말은 얼마나 쓸쓸한가 조용히 중얼거리며 과장없이 무너져 우는 그늘 속에서 천년의 이파리가 가만히 그 울음을 듣고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