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폴더/문학소녀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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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꽃 피었던 자리 어디였나 더듬어 본다'임시폴더/문학소녀인척 2013. 5. 26. 20:41
꽃을 꺾자 꽃나무의 뿌리가 어두워진다꽃나무는 얼른 다른 꽃을 밀어 올린다스스로 환해지기 위해내 오른쪽 늑골 아래환하게 밀어 올려지지 못한 꽃들이수북하다누가 저곳에 저리도 많은 꽃 버렸을까이제는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것들 너무 많아져마음 걸 곳 찾을 일 참으로 없어오래되었구나어느 생에선가 마음 한 번 베인 후로꽃의 안부 묻지 않은 것이늑골의 통증이 그냥 통증이 아니었지만오늘 밤 꽃이 바람에 스치는 것꽃 지는 의미 알라는 것 아니겠는가꽃 피었던 자리 어디었나 더듬어 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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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오래 전 내가 살던 방을 바라보며'임시폴더/문학소녀인척 2012. 2. 11. 13:03
오래 전 내가 홀로 기거했던 아파트를 지나칠 때면 옛 애인의 전화번호가 바뀐 줄 뻔히 알면서 다이얼을 돌려보듯 그 방을 올려다 보곤 한다 밤새 불을 밝힌 채 누군가를 기다리며 술잔을 기울이던 그 방안의 나 그 생생했던 현실감을 텅 빈 실루엣을 바라보다 그런 생각을 한다 얼마나 나를 떠나야 나를 만날 수 있는가 구겨진 회수권처럼 세운상가를 떠돌던 제복의 음울함이라든가 이태원 디스코텍 라이브러리의 사이키 불빛 아래 심해어처럼 發光하던 내 몸짓, 그 어느 순간도 나라는 현실감의 絶頂에서 비껴나 있어본 적이 없었으나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기껏 양파껍칠처럼 벗겨져 사라져버린 무수한 내 현실감의 절정들을 추억하는 일일 뿐 한 사람을 사랑하여 죽음을 생각하던 고통 그 사람을 위해 아흔아홉편의 연시를 쓰던 ..